동래학춤은 부산 동래 지방의 토속춤으로 한양들에 의해 즐겨 추어왔던 동래 덧배기춤의 한 유형이다. 고려대부터 조류 모형무가 있었다는 악학궤범의 기록으로 보아 그 형태는 다르나 동래학춤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추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검정갓과 흰 도포자락의 움직임이 마치 학이 나는 모습을 연상케하며 춤사위에서 풍기는 청초하고 우아한 멋에서 여유만만하고도 고고한 학을 상징적으로 연상시키고 있다. 이 춤은 비록 민속춤이라고는 하지만 상민들이 추었던 춤이 아니고 동래 지방 관속들이나 한량들에 의해 즐겨 추어졌던 춤인 만큼 춤이 천박하지 않고 기품과 격조를 겸비한 가장 인간적인 멋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래학춤은 1972년9월19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동래학춤에 대한 문헌기록이 없기 때문에 동래지역에 거주하는 고로들의 증언에 의하여 여고 할수 밖에 없다.
동래야류 기능보유자였던 故 신우언 (1899~1979) 선생과 동래기영회 이사장 이였던 故 김인호선생, 현재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 겸 동래야류 예능보유자 문장원 선생 등의 의견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동래학춤은 특정한 단체와 개인에 의해 독자적으로 형성되었다기 보다는 이 지방의 줄다리기와 야류 등과 깊은 관계가 있는 춤이다.
동래에서는 예전부터 매년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큰줄땡기기」를 개최했다고 한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편에게는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해서 마을전체가 온통 축제분위기가 되는데 이때 학춤도 한몫 끼었다고 한다. 줄다리기가 끝난 후 동래야류의 본 마당에 들어가기 전에 길놀이를 하고, 놀이마당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함께 어울리는 자리에서 여러 가지 춤자랑이 벌어졌다.
요동춤, 두꺼비춤, 곱추춤, 병신춤, 홍두깨춤, 엉덩이춤, 문둥이춤등을 추는데 이때 어떤 이름난 춤꾼이 당시 흔히 입고 다니던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덧배기 춤을 멋있게 추니까 이것을 본 누군가가 '마치 학이 춤을 추는 것 같다.'라고 한 대서 동래학춤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 전승되고 있는 궁중무용 학무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중에서 추었던 학춤이 분장, 아악반주, 춤 사위 등의 연출에 있어서 정중한데 비해 동래학춤은 도포차림에 민속악기인 사물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추는 소박한 토속민속춤이다.
따라서 궁중문화의 민간전파로 보기보다는 자연발생적 토속문화로 보는 說이 지배적이다.
학춤에 대하여 증언한 故 신우언선생은 "동래학춤은 한량들이 추는 춤사위의 기본형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하면서 원래 동래지방 한량들이 즐겨 추었던 동래 덧배기춤과의 유사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면 동래 학춤의 모태가 되는 동래 덧배기 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경상도에서는 덧배기춤을 '덧보기춤' '덧베기춤' '덧백이춤' 이라 하였고 동래사람들은 '배김새춤'이라고도 하였다. '덧배기'란 말은 탈을 쓰고 보여준다는 덧뵈기나 나쁜 귀신을 베어버린다는 '덧베기'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김승찬교수는 「동래들놀음」이란 책에서 덧배기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덧뵈기→탈놀음→덧베기춤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덧배기춤은 한국탈춤의 모태로 볼 수 있으며 '덧'을 베어버리기 위해 추는 춤이라는 주술적 의미를 지니면서 주로 경상도에서 행해져왔다. 이런 뜻에서 동래 덧배기춤의 주류인 배김사위는 마치 나쁜 귀신을 베어버리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상태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덧배기춤은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귀신, 부정적인 것을 없애버리는 춤으로써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춤이 강하고 폭이 커서 위엄과 멋과 박력을 두루 갖춘 남성적 기질의 춤이다. 이 덧배기 춤에 학의 움직임을 추가해서 좀더 다듬은 것이 지금의 동래학춤으로 동래사람들은 학소대 등에서 학의 모습과 움직임을 잘 관찰할 수 있었고 온천과 교방(敎坊)이 있어서 춤세가 거세었던 데다가 풍류객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자연히 놀이문화가 풍성했다는 여러 조건이 부합되어 발생한 춤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