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야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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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1967. 12. 21. 지정)

dya01.jpg 동래들놀음은 1870년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937년 중일전쟁이 난 해까지 연희되다가 중단되었던 것을 다시 복원한 것 이다. 세시놀이로서 정월 대보름에 놀았는데 주로 밤에 공연이 벌어졌기 때문에 공연장 주변 에 불을 밝히고 공중에도 등을 달아 대단히 화려하였다. 정월 대보름에 열렸으며 길놀이, 앞놀이로서 덧뵈기 춤판, 탈놀이, 뒷풀이로 이어지는 집단적인 대동놀이적 성격이 강했다. 즉 지역의 거대한 축제의 역할을 했다.

 

동래 들놀음에서 사용되는 말뚝이 탈은 말뚝이 탈 중 가장 조형미가 뛰어난 대표적인 탈로서 커다란 코와 이빨, 눈, 귀 등이 험상굿게 어울려 강한 인상을 느끼게 한다. 춤은 기본적으로 덧배기 춤이며 말뚝이 어름새, 울러멘 사위, 어깨 흠듬새, 배김새, 직선사위, 구분사위 등이 있다. 1967년 중요 무형 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dya02.jpg국가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는 1870년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937년 중일전쟁이 난 해까지 연희되다가 중단되었다. 그 뒤 재연되어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놀음은 세시민속놀이로 연희되었다.

 

연희시기는 음력 정월보름에 행해지는데, 준비과정은 야류 탈놀음 계원(契員)들이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동네 각 집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여 비용을 마련한다.

 

음력 정월보름날 동부·서부간의 줄다리기가 끝난 이튿날 밤에 동래 중앙통 광장 패문리(牌門里)에 무대를 가설해놓고 놀았다. 무대는 목재를 사용하여 관중보다 약간 높게 만들고 관중은 삼면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악사석은 무대를 향해서 왼쪽에 있다. 무대 뒷면은 개복청으로 흰 포장(布帳)으로 가려져 있다.

 

이 놀음은 밤에 연희되므로 연희 때는 무대 좌우 적당한 곳에 불을 밝히고 놀음판을 좀 더 화려하게 하기 위하여 제등(提燈)을 공중에 달았다. 연희자들은 가무(歌舞)에 소양이 있는 평민 남자들로, 대개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으며 그 가운데 연장자가 지휘한다.

문화재청 부산광역시 동래구청 국립무형유산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재재단 부산문화재단